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사를 만든 여왕 리더십 시리즈 (문단 편집) === 1부 === *[[선덕여왕]] 자주 언급되는 업적은 [[김유신]], [[김춘추]] 같은 인재 등용으로 이어진 삼국 통일의 초석, 불교를 중심으로 한 화합 도모. 하지만 현 학계에서는 난국을 성공적으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 [[삼국사기]] 기록에서 선덕여왕이 잃어버린 성은 최소 44개에서 최대 52개였으며 회복한 성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서영교는 자신의 저서인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2015) 등에서 선덕여왕을 혼란한 시대를 극복하는 데에 실패한 채 자신의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불사에만 치중한 암군으로 평가했다. [[이도학]]은 선덕여왕을 정치적 실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정변 최종 승리 세력인 김춘추 세력의 사후 옹호 때문에 '현명한 군주'로 추앙된 지도자라고 혹평하였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03/2014010302095.html|여왕실록① 선덕여왕은 '실패한 지도자'였다!(2014)]] [[주보돈]]은 역사 스페셜 2009년 9월 19일 방영분에서 상당히 불행한 개인사와 정치사 속에서 회피, 도피의 수단으로 불교를 믿고 사찰을 지으며 침잠했다고 평가했다. 이희진과 은예린의 공저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넘어 전설이 되었나'(2014) 에선 선덕여왕에 대해 최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무능한 암군로 평가하였다. 조원숙의 新羅 善德王代 度僧 施行과 佛敎政策 (2009)에선 선덕여왕의 당초 의도와는 별개로 숭불정책의 결과가 부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노태돈]]은 古代 東아시아 國際秩序의 再編과 韓日關係 (2010)에서 비담의 난이 선덕여왕의 군사적 실정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